의령옥씨(宜寧玉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始祖(시조) 玉眞瑞(옥진서)는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서기 635년 정관 8학사의 한분으로 사학의 유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고구려에 왔다. 고려가 망하자 신라조에 벼슬하여 詩書禮樂(시서예악)을 가르쳐 그 공으로 宜春君(의춘군)에 봉해졌다. 서기 670년(신라의 문무왕 10년)에 세상을 떠나자, 후에 文惠(문혜)의 諡號(시호)를 내렸다.
1804년 고려시대 珍城監務(진성감무)의 벼슬을 지낸 휘 사미(斯美,1355년생)의 김해 호적이 발견되었으며, 그 호적의 기록에 휘 사미의 선대 6대조로 고려 신종 7년(1204년)에 창정(倉正)의 벼슬을 지난 휘 은종(恩宗 :1171년생)까지 확인되므로 휘 은종을 起 世祖(기 세조)로 하여 옥씨의 世譜(세보)가 세워졌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의령읍 중리, 상리, 부림면 신반, 화정면 상이리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