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면 신기마을
정곡면 소재지에서는 동남쪽으로 십리길인데 남강이 저만치 보이는 마을이다. 행정동리로는 중촌(中村)과 신기마을이 백곡리(白谷里)에 속하며 통칭 회에실 새터다. 회실(발음상으로는「회에실」이다)에 대한 유래는 이동네 주위의 산의 흙이 이상스럽게도 백토(白土)라 어찌보면 석회석지대가 아닐까도 싶다. 회에실의 새터마을은 큰 한길을 끼고 있는 동네로 상신기(새터웃말)와 하신기(새터아랫말) 감나무골 등 세 뜸이다. 이 마을에 제법 오래된 정남초등학교가 있었으나 농촌의 인구감소로 1999년 2월 28일 폐교되었고 망군당고개가 경계가 되며 상신기보다는 하신기가 큰 동네다. 신기(새터)란 지명은 골안마을인 백곡(회에실)보다 훨씬 늦게 마을이 형성된 새 동네인 때문이라고 한다. 감나무골은 솔직한 작은 뜸인데 아주 오래된 감나무 고목이 있고 또한 감이 잘되는 동네라서 자연스럽게 감나무골(감남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바로 뒷산을 홍등(홍등산)으로 부르는 평평한 산줄기인데 어른들의 말로는 홍정승묘가 있는 등때(산줄기)라는 뜻이라 한다. 조금 아래쪽에는 또 다른 큰 묘가 있는데 아무 석물이나 표석이 없는데 옛날부터 심정승묘라고 구전되어 왔다고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의춘군심문식묘재정동백곡(宜春君□文湜墓在正洞白谷) 또는 백야곡이라 했으니 이 묘가 바로 의춘심씨(의령심씨)의 시조공 묘소가 아닌지 궁금하나 알 수없다. 학교 동쪽산골짜기는 세덕골(細德谷)로 서쪽은 대덕골(大德谷)로 부르며 백발도사가 은거했다는 성지골, 장씨 큰부자가 살았던 장자몰 또 작따모랭이란 곳도 있다. 동네 조금 밑에는 연체각(□ 閣)이란 현판이 걸린 꽃집이 있다. 이는 영산현감을 지내신 북헌(北軒) 전시우(田時雨)공과 그의 아우로 성균관 진사에 오른 묵헌(默軒) 전호우(田好雨)공 두 분을 승모하기 위해서 세운 정려다. 원래 가현마을앞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이건했다 한다. 통정대부행영산현감북헌전공(通政大夫行靈山縣監北憲田公) 성균관진사증군자감정묵헌전공(成均館進士贈軍資監正默軒田公)유허비(遺墟碑)가 서 있다. 그리고 소현각(遡賢閣)은 신암(新庵) 전용규(田溶珪)공을 경모하는 비라고 한다. 신암공은 당대 큰 학자로 이름 들난 간재(艮齋)선생 문하에서 수업한 학자로서 자남정사(紫南精舍)에서 후학양성에 진력하신 분이라 후진들이 유적비를 세웠는데 신암처사(新庵處士) 담양전공유사비(潭陽田公遺思碑)다. 연체각 조금위에는 전형수처유인청주정씨효적비(田炯秀妻孺人淸州鄭氏孝蹟碑)가 있고 망군당재(산이름은 망군산인데 맹근산으로 발음하기도 함)밑 양지편에 성균관진사를 지내신 어은(漁隱) 전유수(田有秀)공을 추모하는 망덕재(望德齋)가 있다. 상신기 뒤 동남쪽 고개를 넘으면 지정 백야마을인데 이 고개가 무섭기로 소문난 도둑꼬(도둑고개)라고 하는데 그 연유인즉 해지고 난 뒤에 이 산고개를 넘어가면 반드시 도적에게 돈을 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너 산골짜기에는 전(田)씨문중 재실인 경모재(敬慕齋)와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그리고 안골어귀에는 200살쯤 되는 버드나무가 있는데 속은 비었고 둘레가 세아름 정도가 되는 거목으로 마을의 당산나무라고 하며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동네서 300여미터쯤에 강을 만나게 되는데 몇해전까지만 해도 배나리(뱃나루)라 작은 거룻배가 왕래를 하면서 사람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요즘엔 주물나루(主勿津)이라하고 강도 남강으로 부르지만 옛기록에는 풍탄진(楓灘津)이라거나 가현진이다. 그리고「이물이나리」로 더 많이 알려진 이 나루는 함안 법수면으로 연락되는 강나루로 주물(主勿)을 앞글자는 뜻(훈)을 따서「임」이고 뒷글자는 소리(독음)를 따서 부르자니 임물 임무리 이무리로 변음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94년까지도 이곳은 줄배를 타고 내왕하는 사람이 있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