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 통계

본문 바로가기

의령군청 주요 누리집
  • 글자크기 증가

    글자크기

    글자크기 축소
  • 닫기

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정곡면 중촌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5129
등록일
2003.08.21
읍면
정곡면
첨부

법정동리명은 백곡리(白谷里)에 속하며 자연마을로는 중촌이라 부른다. 제법 너른 들도 있는 산골안 동네인데 머리맡에 유서 깊은 가막산 봉오산(봉화산의 변음)이라고 부른다)이 있고 앞쪽으로는 널브이산(넓고 평평한 언덕 같다는 뜻인데 널브러치다에서 비롯된 말인 것 같다)이 산을 경계로 하여 북실(적곡)이라고 하며 서녘의 큰 산줄기는 강등이라고 부르는데 이 일대 산의 흙이 백토다. 꼭 하얀 회가루와 같아 보이는데 강등(姜嶝)이란 산이름은 그곳 중턱에 대사간(大司諫, 조선시대 정3품 벼슬)을 지내신 강렬(姜烈)공의 묘소가 있어서 산줄기 이름이 된 것이라고 한다. 가막산 밑에 배껏말 (바깥마을, 외동. 外洞)과 가운데말(중촌. 中村)이 있고 골 깊숙이 들어앉은 마을이 안말(내동 ; 內洞)로 부른다. 그리고 한참 떨어져 있는 싹실도 이 동네에 포함된다. 이곳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옛날 하곡이란 지명을 쓴 적도 있는데 그 뒤 회실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 동네 주위의 토질이 모두 석회(石灰)이나 백토(白土)인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막산은 조선시대 봉수대(봉화대)가 있던 곳이었는데 지금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런 연유로 적곡으로 통하는 산고개 이름도 그렇거니와 이산의 주위에 있는 마을마다 봉오재가 있다. 안말 서쪽 강등의 산코숭이에는 아주 나이 많은 돌감나무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300살은 더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조금 위에 있는 묘역에 가선대부판중추부사(嘉善大夫判中樞付事) 서계강공지묘(西溪姜公之墓)라고 새긴 큰 비석이 있다. 이 분은 대사간을 지내신 강열공의 묘소이고 거기서 한참 위쪽에는 진사를 지내신 서근복(徐謹復)공과 선교량(宣敎郞), 서희업(徐熹業)공의 묘소가 있다. 동구 밖에는 백산정(白山亭)이 있는데 어모장군(禦侮將軍) 순홍 안씨 안탁(安濯)공의 사적비와 묘단비가 있고 그 위에 긍구정(肯構亭)이란 현판이 걸린 재실이 있다. 원래 둔세정이었던 것을 나중에 긍구정으로 재명을 바꾼 것이다. 마을 안에는 술선재(述先齋), 영모재(永慕齋), 옥휘정(玉輝亭), 삼학정(三鶴亭) 담양전씨의 재실이 여러 채가 있다. 그리고 싹실이란 마을은 이 동네와는 영 떨어져 있는데 옛날에는 바로 동네 앞까지 물이 드는 저습지대라 앞들에 심어놓은 농작물이 물에 담겨서 못먹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니 곡식의 싹이 잘 트고 물이 안 들었으면 하는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지명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동네 뒤산이 모두산(茅頭山)이다. 지금은 열세가구가 살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