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덤과 박진마을 이름의 유래
옛날, 22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된 고씨 부인이 딸 하나를 고이 길러, 「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총각을 사위로 삼게 되었는데, 그 사위의 어머니 역시 청상과부로 애지중지 아들을 길렀던 터였다. 그래서, 신부의 어머니는 사위의 어머니인 안사돈에게 딸을 잘 보아 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그랬더니, 신랑의 어머니 되는 안사돈의 말이 아무 걱정 마시라고 언약을 하였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는 어떻게나 금실이 좋든지 날이 가면 갈수록 그 도는 더하여 갔다. 이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차츰 며느리에 대한 질투심이 생기면서 며느리가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밤, 아들과 며느리가 방에서 애정어린 장난을 하면서 웃음을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던 시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며느리를 불렀다.
그 소리를 듣던 며느리가 자기 방에서 「예, 어머니」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기어코 그 며느리를 자기 방으로 불러드려 야단을 쳤다. 그러자, 며느리는「어머님, 잘못했습니다.」하고 빌었으나 막무가내였다. 일이 심상찮음을 알고 아들이 어머니 방으로 건너가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하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과거 볼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맨날 사랑에만 빠져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신 선조 어른들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여야 할게 아니냐 하며 꾸짖었다. 그러자, 며느리가「어머님, 모든 일이 제 잘못입니다. 용서하십시오」하고 빌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또 야단을 치고는 그날 밤으로 며느리에게 안종과 바깥종의 옷을 빨도록 명령하였다. 그러자, 박진은「어머니, 양반집 며느리에게 종의 옷을 빨게 하다니 그건 너무하지 않습니까?」하였더니, 어머니는「양반집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안 들어도 좋다더냐?」하면서, 박진을 보고 여자들의 일에 참견 말고 어서 가서 공부나 하라고 호령을 쳤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종들의 옷을 빨아야 했고 방에서는 시어머니의 넋두리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그럭저럭 과거 날짜가 가까워졌다. 박진은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나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행장을 다 꾸리고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가문을 위하여 부디 급제하여야 한다. 이게 이 에미의 평생 소원이라고 하면서, 이어서「지난번 아랫마을 김진사댁 도령도 두고 온 새색시 생각을 하다가, 글귀가 막혀 낙방을 하고 망신하였다고 하지 않더냐? 부디, 너는 실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고 당부를 하였다. 그러자,「어머님, 염려 마십시오.」라고 길을 떠나려 했다. 그때, 며느리는 낭군을 전송해야 좋을지 안 해야 좋을지 망설이다가, 낭군을 배웅하기 위하여 채비를 하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너는 왜 그렇게 서성대고 있느냐?」하며 눈썹을 곤두세웠다. 며느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동구밖까지만이라도 …」간신히 대답하고 말끝을 흐렸다.「이 에미가 나갈 거야, 양반집 며느리가 저렇게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서 동네 길을 다니면 양반집꼴 좋겠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쏘아 부치고 몸을 돌렸다. 아내에게 눈인사를 한 후,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어서 들어가거라, 사내 대장부가 큰일을 하러 가는데, 아낙이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시어머니의 핀잔에도 며느리는 선뜻 돌아설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며느리는 멈칫멈칫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너는 어서 가서 밭에 김이나 매어라.」하며 며느리를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 얼마간 흐느끼던 며느리는 문득 머리를 스쳐가는 묘안이 떠올랐다.「옳지, 밭에 가면 떠나는 서방님의 뒷모습이나마 멀리서라도 바라 볼 수 있겠지.」하고 생각하였다. 그이는 얼른 밭으로 갔다. 낭군이 동구밖 모퉁이를 돌아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낭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얼마나 기다려야 돌아오실까. 부디 성공하고 돌아오셔야지.」 이렇게 기원하며 낭군이 사라진 곳을 넋을 잃고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새색시!」하고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며느리는 소스라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건달차림의 젊은 녀석 하나가 등뒤에 다가와서 징글맞게 웃고 있었다.
며느리는 무서운 마음이 들어 손에 들고 있던 호미를 내던진 채 집으로 달렸다. 그러나, 몇 발짝도 못 가서 그이의 손목은 건달 녀석에게 나꿔채이고 말았다.
「무서워할 것 없어, 그까짓 서방쯤 잠시 이별한다고 그렇게 슬퍼할 건 없잖소. 그 동안 내가 사랑해 주지」하며 징글맞은 녀석은 그미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미는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억센 사나이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뭐가 어찌 되는 지도 몰랐다. 요행히도 그미는 사나이의 손등을 물고 녀석이 주춤하는 사이에 빠져나가 달렸다. 사나이도 뒤쫒아왔다. 「아, 이젠 몸을 버리는 수밖에 없는가?」라고 생각하며 밭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벼랑 끝에 바위가 있고, 그 밑으로는 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미는 벼랑을 향해 달렸다. 사나이의 손이 닿을락말락 할 때, 그미는 벼랑 가에 다다라, 생각할 사이도 없이 벼랑 끝에 있는 바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낭군은 과거에 낙방을 하고 말았다. 비록 낙방은 했을망정,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날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사랑하던 아내는 죽고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렇게 배웅하고 싶어했던 아내를 쫒아 버리지 않았던들 죽지 않았을 것을 하며, 」그는 벼랑가 바위로 갔다. 며칠 밤낮을 사랑하는 아내를 부르며 울던 그도 마침내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젊은 부부가 빠져 죽은 그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밤이면 도깨비불 두개가 나타나 서로 부르며 어울려서 날아다녔다.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 벼랑에 있는 바위를 「각시덤」이라 불렀고 마을 이름은 아내를 따라 죽은 남편의 이름을 따서 「박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