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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의령읍 중본(中本)마을

작성자
의령읍
작성일
3303
등록일
2003.08.06
읍면
의령읍
첨부

옛 문헌에 중동(中洞)은 관청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산수가 둘러서 연꽃이 물위에 피어오르는 형국이다. 그리고 동네 앞에 큰 장터가 있다라고 돼있다. 중동 안에는 중본(중동의 본동네), 상동(上洞)이 있는데 보통으로는 내삼동의 중동과 상동네로 부르고 있다. 군청소재지이자 읍소재지로서 읍지 중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성내(읍성의 안이라는 뜻), 장대, 오골 등으로 불러왔지만 읍성이 쌓여 있을 때 성의 안에 들어 있던 일부 민가가 있었으므로 성안(성의 안)이니 성내로 불렀고 또 읍성 밖 남산쪽에 자그마한 마을을 장대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옥골은 옛날 죄인을 가두어두는 형옥(刑獄, 감옥)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인데 고을 관아의 앞이자 동쪽 자리로 지금은 주택밀집지역이다. 지금 군청과 의령초등학교 동쪽 담밑 일대가 고을 관아터였다고 하며, 지금도 당시 관아건물의 주춧돌(礎石)몇 개가 있다. 관아를 중심으로 하여 둘레가 2570자(약 771미터) 높이가 4자 5치(약1미터 35센치)로 돌과 흙으로 쌓은 읍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 남아 있는 일부를 보면 높이가 약 2미터정도이고 바깥쪽은 아주 큰 바위로 쌓았음을 볼 수 있다. 추재 옆에는 아직도 길게 남아있고 시내 민가가 들어선 곳에도 성지였음을 확인 할 수 있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북쪽으로 봉덕산(鳳德山:지금은 봉무산(鳳舞山)으로 부름)인데 봉황새가 날개를 편 채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데 남쪽으로 안산격인 구룡산(龜龍山 : 지금은 九龍山)이라 청룡백호에 주산과 안산을 잘 갖춘 지형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봉무산자락에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 때 김조근(金祖根) 현감(순조33년 1833∼헌종1년(1835년)까지 2년남짓 재임함)의 따님이 이곳에 살다가 나중에 헌종의 왕비(효현왕후)가 되었던 연유로 해서 현감의 사저가 있었던 곳을 「왕띠」라고 부르게 되고 구룡산도 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왕띠」란 말은 민초들이 왕의 마누라(왕비)란 말을 서민적이고 통속적인 표현으로 왕댁(王宅) 즉 지방토박이말로는 왕띠기라고 말하기 때문에 왕띠기란 말이 줄여져서 왕띠가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지금도 군청 뒤쪽으로 산과 충혼탑이 있는 곳을 아울러서 왕띠란 지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터도 없어졌고 잊혀진 사실이지만 일육목욕탕 그 자리에 생사당(生祠堂)꽃집이 있었다. 이 사당은 살아있는 사람을 기리는 뜻으로 세운 비각인 셈인데 1900년대 고을 목민관으로서 위민선정(爲民善政)에 청백리로 알져진 정봉시(鄭鳳時 1901년∼1902년간 재임) 군수의 공적을 기리고자 세운 것인데 일제강점기와 6.25전란을 거치면서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지금 의령교육청 자리는 1906년 백산 안희제 선생이 세운 의신학교(宜新學校)터이며 지금 백산도서관 건물은 1960년 군내유지들이 기성회를 조직하여 백산회관을 건립하다가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었던 것을 교육청에서 맡아서 건물을 완공하게 되었고 소유권도 넘어가 버린 것이다. 1974년 당시 교육장과 경남도교육감도 이런 내력을 알게 되었으며 백산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백산기념도서관을 개관키로 합의되어 1년동안 장서수집운동을 전개하여 3000여권을 확보하고 1975년 3월1일 개관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령경찰서 구내에는 자그마한 충혼비가 서 있는데 이 비석은 1953년 지리산 빨치산의 습격으로 당시 서장을 비롯하여 순직한 경찰관의 위패를 모시고 추념하고자 세운 것이다. 임란창의의 18장령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는 1978년에 정부사업으로 건립되었고 이에 앞서 1972년에 온 군민과 출향인들의 성금으로 의병탑(義兵塔)이 세워졌으니 의령사람의 지극한 애향심과 함께 남다른 모름을 보여주는 기념물이자 상징물인 셈이다. 우체국은 원래 지금 농협 군지부 앞에 있었는데 남산쪽으로 옮겨갔다. 의령군청을 비롯하여 경찰서, 교육청, 등기소, 농협지부와 의령농협, 전신전화국, 우체국, 의료보험조합, 의령읍사무소, 충익사관리소, 의령초등학교등 주요기관과 사회단체사무실이 밀집돼 있으며 남산에는 가야고분과 수월사(水月寺))가 있고 산밑에는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3·1독립운동 기념비가 서 있다. 경주 최(崔)씨가 먼저 들어왔다고 하며 지금은 총 500여가구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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