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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의령읍 산다(山多)마을

작성자
의령읍
작성일
3826
등록일
2003.08.06
읍면
의령읍
첨부

의령읍 덕실(德谷)골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산협마을이다. 옛날 지명은 「산대골」이었다. 비슷한 지명으로 「산대배기(산대박이)」는 산꼭대기 또는 깊은 산골짜기를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그리고 산죽(산에 자생하는 대나무, 시누대(식대·순어리대)라고도 한다)이 많은 곳이라서 산죽골이니 산대골이란 지명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 산대골이 산다(山多)로 정해진 것은 고유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훈(의미)은 무시한 채 음(독음)을 위주로 정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안산다와 바깥산다(외산다) 두 뜸과 건너골에 두어집이 있다. 동네밖에 간좌방위로 경사진 산등에는 남씨문중의 선산이 있다. 동네 뒤로 오감재, 가매실재, 대산재, 마내재 등 산고개잿길이 많은 데 모두 고개너머 닿는 동네이름을 붙였다. 아득한 옛날 방물저자가 섰다는 박령재의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귀양살이를 했던 곳이란 얘기도 있다. 그래선지 몰라도 박령재 건너 동북쪽 가파른 산등대에는 기묘사화때 환란을 피해서 이곳에 잠시 살았던(일설에는 유배살이를 했다고도 함) 좌의정 안당공의 묘소가 있다. 고려가 망하고 역성혁명의 혼란기에 개성 왕씨 일가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며 옛 도읍 송도를 잊을 수 없어서 재실이름도 모송재(慕松齋)다. 모송재 안에는 자헌대부 행강릉부사를 지내신 왕장(王璋)공과 병사를 지내신 왕종지(王宗智)공의 추모비도 서 있다. 아랫산다 동구 밖에는 허덕재구지(許德齋舊址)란 글이 새겨진 자연석의 큰 비석이 서 있는 데 원래 덕재란 허씨 재실이 있었던 자리라서 표석으로 세운 것이라 한다. 그리고 행실이 바르고 다른 이의 모범이 되어 고을 유림에서 효열부 표창을 했다는 내력이 새겨진 칠원제씨효열비가 돋보인다. 이 마을에는 덕수 장(張)씨가 먼저 들어왔다고 하며 뒤따라 개성왕씨를 비롯해서 여러 문중이 들어 왔다고 하는 데 지금은 김씨, 심씨를 비롯하여, 장·왕·서··표·남씨 40여가구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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