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 통계

본문 바로가기

의령군청 주요 누리집
  • 글자크기 증가

    글자크기

    글자크기 축소
  • 닫기

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의령읍 성남(省南)마을

작성자
의령읍
작성일
4204
등록일
2003.08.06
읍면
의령읍
첨부

보통 말할 때는 덕실(德谷)의 비성골이니 비신골로 부르는 마을이다. 법정동리 상으로는 서남(徐南)·수암(水岩)과 같이 하리(下里)에 속한다. 덕실의 초입에 위치해 있고 길가에 큰비석이 여러 기 서 있었으므로 비(碑)선골이란 말이 변음되어서 비성골, 비신골 등으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곳도 토속적인 지명을 한자로 적으면서 돌비와는 관련없는 날비(飛)자를 써서 비성곡(飛省谷)으로 쓰기도 했고 아예 엉뚱한 성남(省南)으로 정한 것도 의외라 할 것이다. 의령읍과는 개울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효종(孝宗) 갑오년(1654년)에 윤순거(尹舜擧)현감 때 퇴계 이황(□滉)선생을 추모향사하기 위해서 건립한 덕곡서원(德谷書院)이 있는 곳인데 서원은 현종(顯宗) 경자년(1660년)에 나라에서 사액(賜額)되었지만 고종 신미년(1871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현판을 내리고 덕곡서당으로 바꾼 채 보존 돼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 퇴계선생의 처가댁이 있었다거나 무슨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이곳이 아니고 가례마을이다. 처가댁은 김해 허(許)씨 집안이며 자주 내왕을 하셨고 어떤 때에는 한참 동안 머물면서 향내유림들과 어울려서 시문강론과 시회를 갖기도 했다고 한다. 가례(嘉禮)란 지명과 가례동천(嘉禮洞天)과 서암(書巖)이란 친필을 받아서 암각한 필적이 남아 있다. 또한 이 동네를 성안골이니 서언골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지명은 서원(덕곡서원)이 있다해서 서원골인데 변음이 되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비석이 즐비하게 서 있던 곳인데 지금 가보면 한자리도 없다. 이는 동동 삼거리 조금 밑에 터를 마련하여 이곳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서 있던 것을 모아 세우게 되었으니 비성골에는 비석이 없어진 것이라고 한다. 비신골이나 서안골이란 옛 지명은 아는 분도 많지 않고 그저 덕실의 하리(下里)라거나 맨아랫동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사는 분들도 지명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 뿌리 있는 지명을 무시한 채 입지조건만을 생각하고는 웃마을은 상리(上里), 중간은 중리(中里), 아랫쪽이라 하리(下里)로 했으니 신분계급적인 구분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 군에서도 유일한 아동복지시설(고아원)인 혜림학원과 그 옆에 관리대가 있다. 읍내와도 가깝고 교통도 아주 편리한 곳이라 날이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원래 김녕 김(金)씨가 먼저 들어왔고 뒤이어서 여러 성바지가 정착하게 되었다는데 지금 김(金)씨, 이(□)씨, 서(徐)씨, 박(朴)씨, 전(田)씨, 정(鄭)씨, 최(崔)씨, 강(姜)씨 90여세대가 살고 있다. 동네 바로 앞이 구룡산(남산)이고 상리에서 흘러오는 물길이 이 마을 앞에서 남산천으로 합수되고 여기에 의령구름다리가 자리잡고 있어 마을 경치가 더욱더 도더라진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