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면 신기마을
대의면 소재지인 장승배기(장승박이)에서는 십리길이다. 산청 땅을 밟으면서 동남방으로 들어가면 나직한 산이 서쪽을 막아섰고 제법 너른 들이 있다. 동네 뒤로 무성한 대밭이 있고 들 저쪽 산자락에 재실과 꽃집 그리고 돌비가 모여져서 뜸을 이룬 것 같이 보인다.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새터」「새터말」인데 곡부 공씨의 집성촌이라「공촌(孔村)」으로 통한다. 신기(新沂)란 소지명을 썼다고도 하는데 들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역수(동북이나 북쪽으로 흐르는 물을 말함) 때문인지 아니면 산청 땅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임란 때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마주 보이는 앞산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묵은터」니 「망골」이라 부르는 이곳은 동남이 막힌데다 물길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갈바람과 하늬바람을 거침없이 받게 되는 지대였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소년상이 잦고 집안에 재액이 끊이지 않아서 지금의 마을자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망한 골짜기란 뜻인데 줄여서「망곡」이 된 모양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대밭이 조금 남아 있고 기와 부스러기며 주춧돌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한다. 동네 옆쪽 저수지가 있는 골을「잣골」로 부르는데 한자로는 척곡(尺谷)으로 적는다. 동남쪽 산고개가「방화재」인데 재너머 마을이「방화실」이니 동네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이다. 또 뒤편으로 산청(생비량)을 거쳐 진주 나들이 잿길은「진등재」다. 「길다」의 지방말이「질다」이며 「등」은 산등성이를 뜻하므로 결국 산고갯길이 가파르고 멀다고 진등재라 한 것 같다. 오랜 동안 식수가 나빠서 애태웠으나 최근에는 간이상수도가 설치되면서 물 문제는 해결되었다 한다. 대종 재실인 창산재(昌山齋)뒤에는 공부자(孔夫子)의 영정을 모신 사우가 따로 있고 동네 안에 백원재(百源齋), 그리고 창산재 옆에「효자증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곡부공영수지려」(孝子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曲阜孔榮洙之閭)라 새겨진 쌍효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