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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의령읍 서남(徐南)마을

작성자
의령읍
작성일
3712
등록일
2003.08.06
읍면
의령읍
첨부

의령읍내서 서남쪽으로 오마작 길이다. 「박령재」「남재」가 있고 옛날에는 「덕실」「덕곡(德谷)」이란 지명의 면 단위 지역이었다. 화정면과 접경해 있는 골짜기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이 있었고 여러 곳에 선사시대와 원삼국시대의 고분과 유적이 많이 분포돼 있다. 덕곡면 시절엔 아래쪽에 있다하여 「아랫말」「하동(下洞)」이라 불렀지만 우리 정서에 거슬리고 비천한 뜻을 담고 있는 아래 하(下)를 기피하는 관념 때문에 촌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 뜸엔 달성 서(徐)씨가 한 뜸엔 의령 남(南)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그 밖의 세 뜸에는 낱성바지 몇 집뿐이었으므로 성씨를 따서 소지명으로 삼은 것이라 한다. 입촌연대와 가호수 기준에 따라 「서남촌」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서쪽방향에 유서 깊은 벽화산(산성산)이 높게 솟아 있고 마을 뒤로는 구룡산(龜龍山)의 줄기로 이어지는 매봉산이다. 마을 앞으로는 큰 도랑이 흐르는데 동북간으로 흐르는 역수(역류)다. 학교 앞에는 삼충각(三忠閣)과 효열비등이 있다. 서촌과 남촌 외에「성밑말」「지장골」「질가땀」은 한길 양쪽에 형성된 새 동네다. 산성의 밑에 있다해서 성밑마을이고 이 뜸과 길가동네 뒷산자락에는 광복직후까지도 전통 옹기굴이 있었던 곳이라 흔히 「옹구땀」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도끼의 날이란 뜻의 산이름이 있는데 「도치날」산이다. 장끼란 놈이 날아오르는 형상이란다. 「지장골」은 박씨가 몇 집 살았다고 전하는 작은 골마을인데 아마 지장밭(기장; 이곳 말로는 잔지리)이 많아서 붙여진 지명인 듯 하다. 읍내 남산천 물길이 바뀌어질 때 이곳 도랑 물흐름도 바꾸어 진 것이다. 매봉산 허리에는 「마내재」가 있는데 강변의 만상·만하로 통하던 소로잿길이었다. 마을 뒤로「이음산」은 옛 유물이 더러 발굴되는 야산이다. 이 두 동네 주위에는 감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며 그래서 흔히 「덕실감곳」이란 별명이 있다. 마을 앞에는 희귀한 이팝나무 한 그루가 있고 동네 가운데 큰 기목나무 고목이 있으며 특히 말 크기만한 깻돌(들돌)이 남아 있다. 옛 풍습에는 장골이 되었는지를 시험하는 한편 남정네들이 기운자랑으로서 큰돌을 보듬어서 어깨 너머로 던지거나 두 손으로 들어서 던지는 민속놀이가 있었다. 서촌에는 문중 재실인 진산재(津山齋)와 제산재(齊山齋)가 있어 두 문중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서씨가 16∼17대를 잇고 있다니 5백년이 넘은 고촌임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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