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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지정면 나림마을

작성자
지정면
작성일
3554
등록일
2003.08.06
읍면
지정면
첨부

지정면 소재지 마을이 나림인데 법정동리명은 봉곡(鳳谷)이다. 시대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지산(芝山)지역이라고 하며 동녘에 자리 잡은 두월(斗月)과 조금 더 떨어져 있는 당성곡(堂城谷)이 나림에 속하는 협동이다. 어른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네 서북쪽의 큰 산이 고동산 즉 나산(□山) 또는 나산(□山)으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산꼭대기에는 50여평 정도의 산정호수가 있다. 산도 좋고 동네숲도 좋아서 나림(□林)으로 고쳤다는 설명이다. 양산이니 뒷동산으로 부르는 것은 이 고동산의 줄기인 셈이다. 지금은 여러 기관이 몰려 있는 면의 중심지로서 날로 번창하는 동리라고 한다. 협동인 당성곡은 한길에서 조금 들어 앉아있는 마을인데 스무남집이 살고 있다. 원래 솔직한 골안이라서 가는 골(細谷)으로 부르다가 다시 당산나무라고도 하고 동네숲이라고도 말하는 나무가 울창해서 당산골로 불렀는데 당산과 무당을 연상하게 되어 당성골로 고쳤다고 한다. 동네 뒤편 큰골이라는 곳에서는 토기 등 옛날 유물이 간혹 발굴된다고 한다. 소재지에서 가까운 말월마을은 지금 열집이 사는 작은 뜸인데 한자로는 두월로 쓰고 있다. 옛 기록에는 말리 즉 끄트머리 동네라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동네 생김새가 꼭 말(곡식의 양을 헤아리는 큰 그릇)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지형이라는 것이다. 동구 밖에 있는 새미(샘)는 웃동네 사람들까지 이 물을 길러 갔다고 하며 동네 주위의 들 이름에는 덤드름들과 밤낮들이라고 부르는데 논 한마지기(200평)마다 웅동(웅덩이) 한 개씩이 있었을 정도로 수리가 좋지 았았고 여름농사 때면 밤낮으로 드리(드레, 두레)로 물을 퍼올려야 했기 때문에 밤낮들이 되었다고 한다. 소재지 큰 정자나무 바로 옆에는 남농(南 ) 박진목(朴晋穆)공, 의사(義士) 김문옥(金文玉)공의 독립운동기념비가 있고 또 꽃집에는 안무상(安武商) 면장님의 송덕비가 서 있다. 재일교포로서 향토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의당(宜堂) 박중석(朴重錫)공과 이시돌(□時乭)공의 송덕비도 있다. 지정 봉곡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나림하면 얼른 아는 분이 적다. 처음에 파평 윤씨와 신창 표씨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문헌상으로는 진양 강씨와 순흥 안씨가 오래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진양 강씨 30집, 순흥 안씨25집, 담양 전씨가 21집, 구씨, 김씨가 열서너집씩이고 이씨10집, 박씨, 성씨 등도 한두집씩으로 124가구가 살고 있는 큰 동네다. 진양 강씨 문중의 경송재(景松齋), 연안 이씨의 봉림재(鳳林齋), 순흥 안씨의 추모재(追慕齋), 능성 구씨의 숭의재(崇義齋), 순흥 안씨의 의우정(宜友亭),등 여러 채의 정재가 있다. 이 동네의 지명유래를 찾으면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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