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陽川許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始祖(시조) 許宣文(허선문)은 孔巖村主(공암촌주) 或(혹)은 大匡公(대광공)이라고도 하는데 駕洛國(가락국) □首露王(금수로왕)의 30世孫(세손)으로 高麗(고려) 太祖(태조) 王建(왕건)을 도와 孔巖(공암)을 食邑(식읍)으로 下賜(하사)받아 貫鄕(관향)으로 삼았다. 공암은 陽川(양천)의 옛 이름으로 경기도 □浦郡(금포군)에 있던 地名(지명)이다.
入鄕祖(입향조)
始祖(시조)의 22世孫(세손) 懿(의)는 字(자)가 仲徽(중휘)이고 호는 竹泉(죽천)인데 仁祖(인조) 14年(년)(1636)경에 入鄕(입향)하였는데 황해도 松禾(송화) 현감을 역임하였고 中村(중촌)에 文正公(문정공) 眉叟先生(미수선생)의 嵋淵書院(미연서원)이 있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대의 중촌, 사천 축동, 창녕 이방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