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먼 산을 배경으로 참으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렸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랑을 하고 싶어 친구를 찾아갔다. 그림을 그린사람이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 이 그림이 어떤가. 이 친구는 그림을 그린 사내에 마음을 읽고 말했다. “그래 정말로 잘 그렸네. 감탄을 하면서 연신 말했다. “정말 참으로 잘 그렸어. 그러자 그림을 그린 친구가 우쭐해졌다. 그 때 친구가 말했다. “그리기는 참 잘 그렸는데. 쯧쯧쯧 하면서 혀를 찼다. 그림을 그린친구가 친구에 걱정스런 표정을 보고 말했다. “아니 뭐가 잘못 되었는가? “참으로 그리기는 잘 그렸네만 어떻게 짐승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가? 그 것이 참으로 애석하네 그려. 그러자 그림을 그린 사내는 친구에 속을 알아채고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잘못 봐서 그런 걸세. 이 그림 속에 동물들은 무지하게 많다네. 의심을 갖고 보는 자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게 짐승이 보이는가? 그러자 그림을 그린 사람이 말했다. “내 눈에는 보이는데 왜 그러는가? 이 그림 속에 동물을 보려면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어떻게 그림 속에 들어가서 동물이 있나 없나를 보는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말했다. “그럼 산수화에 누가 짐승을 그려 넣는다는 말인가?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마치 음흉한 여우와 교활한 토끼에 싸움을 보는 것 같군.
서로가 속내를 들어 내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떠 보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인간관계가 만들어 진다. 친구란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