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대구서씨(達城. 大丘徐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達城徐氏(달성서씨)의 始祖(시조)는 徐晋(서진) 高麗(고려)때 奉翊大夫(봉익대부) 判圖(판도) 判書(판서) 등을 지냈고 나라에 功(공)을 세워 達城(달성)(大丘(대구)의 옛 이름)君(군)에 封(봉)해지면서 達城(달성)을 食邑(식읍)으로 하사 받아 世居(세거)하게 되었다. 大丘徐氏(대구서씨)의 始祖(시조)는 徐閈(서한), 高麗(고려)때 朝奉大夫(조봉대부) 軍器少尹(군기소윤)을 지냈으며 그 뒤의 昭穆(소목)을 잃었으나 徐居正(서거정) 등 큰 인물이 배출 大丘(대구)에 世居(세거)하면서 대를 이어 왔다.
入鄕祖(입향조)
松禾府使(송화부사)를 지낸 徐漝(서습)때 의령에 들어왔으며, 손자 遯齋(둔재) 錫□(석연)이 端宗(단종)이 禪位(선위)하자 물러나 의령으로 돌아왔다. 또 閈(한)의 23세손 得淳(득순)은 正祖朝(정조조)에 山淸(산청)에서 大義面(대의면)으로 移居(이거)하였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의령 하리, 정곡 예동, 지정 득소, 궁류 평촌, 유곡 신촌, 대의 신전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