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성구씨(綾城具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始祖(시조)는 具存裕(구존유)로 高麗文魁(고려문괴) 壁上三韓三重大匡(벽상삼한삼중대광) 檢校上將軍(검교상장군)에 올랐다. 丙寅譜(병인보) 世祿(세록)편에 配位(배위)는 綾城朱氏(릉성주씨)를 장인은 朱灒(주찬), 宋(송)나라 사람으로 호는 淸溪(청계)요 翰林學士(한림학사)를 지냈다.
朱(주)나라가 몽고에 패망하자 그는 高麗(고려) 高宗(고종)11年(년) 葉公濟(엽공제), 陳祖舜(진조순) 등 7學士(학사)와 함께 錦城(금성)(지금의 羅州(라주))에 망명해 왔다. 그뒤 元(원)이 이들 망명객을 추격하자 그는 積德(적덕)으로 이름을 고쳐 綾州(릉주)(綾城(릉성)) 考亭理(고정리)에 은둔하였다고 한다.
朱積德(주적덕)의 딸이 存裕(존유)에게 출가하여 綾城具氏(릉성구씨) 繁衍(번연)의 기틀이 되었다. 유명한 晦菴(회암) 朱熹(주희)는 그의 妻高祖(처고조)이며 綾城(릉성)에 살았기 때문에 貫鄕(관향)으로 삼았다.
入鄕祖(입향조)
始祖(시조)의 15世孫(세손) 鳳漢(봉한)은 字(자)가 漢遠(한원)이며 號(호)는 景近(경근)이니 通德郎(통덕랑)으로 1630年代(년대)에 入鄕(입향)하였고 16世孫(세손) 仁英(인영)은 號(호)가 竹潭(죽담)인데 壬亂前(임란전)에 出戰戰死(출전전사)한 功臣(공신)이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화정상정, 지정봉곡, 부림경산, 진주미천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