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光山金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신라 太輔公(태보공) 閼智(알지)를 都始祖(도시조)로 新羅(신라) 45代(대) 神武王(신무왕) 祐徵(우징)의 셋째 王子(왕자) 興光(흥광)이 시조다.興光遺墟碑(흥광유허비)에는 新羅末世(신라말세)에 宗國(종국)에 장차 난리가 있을 줄 짐작하고 武州(지금의 光州(광주))에 遯居(둔 거)하였으니 □氏(금씨)의 籍(적)을 光山(광산)으로 함이 이 때 부터라고 밝혔다. 대대로 碩學(석학), 巨儒(거 유)를 배출한 名門(명 문)으로 沙溪(사계), 愼獨齋先生(신독재선생)은 文廟(문묘)에 配享(배향)되었다.
入鄕祖(입향조)
始祖(시조)의 32世孫(세손) 寬宅(관댁)은 字(자)가 善養(선양)이니 1778년경 합천읍 영창에서 의령 다사동으로 입향하였고 36世孫(세손) 九鉉(구현)은 號(호)가 紫岳(자악)이며 儒學者(유학자)로 推重(추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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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대의면 다살. 죽전, 마쌍리, 평촌, 의령읍 경향 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