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씨(仁川李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始祖(시조) 李許謙(리허겸)은 伽倻國首露王(가야국수로왕)의 둘째 아들로 母后(모후)의 姓(성)을 따라 許氏(허씨)가 되었다가 新羅(신라)의 呵湌(가찬)으로 使臣(사신)이 使臣(사신)이 되어 入唐(입당)하였는데 安□山(안녹산)의 亂(란)으로 唐玄宗(당현종)이 蜀(촉)으로 들어갈 때 扈從(호종)한 功(공)으로 帝姓(제성)인 □氏(이씨)를 賜姓(사성) 받아 歸國(귀국)하니 邵城伯(소성백)에 封(봉)해지고 高麗朝(고려조)에서 尙書左僕射(상서좌복사) 上柱國(상주국) 邵城縣開國侯(소성현개국후)에 올랐다. 許謙(허겸)은 許奇(허기)의 10世孫(세손)이며 □許□姓(이허부성)으로 내려오다가 貫祖(관조)를 許謙(허겸)으로 食邑(식읍)인 仁川(인천)을 貫鄕(관향)으로 삼았다.
入鄕祖(입향조)
始祖(시조)의 七世孫(칠세손) 雙明齋(쌍명재) 仁□(인노)는 神宗朝(신종조)와 高宗祖(고종조)에 出仕人(출사인)이면서 벼슬이 右(우) 諫議大夫(간의대부)에까지 올랐지만 文筆(문필)로써 더욱 추앙을 받았는데 高麗末(고려말)(1300년경)에 부림면에 入鄕(입향)하였다. 國子監(국자감) 大司成(대사성)으로 銀臺集(은대집), 雙明齋集(쌍명재집), 破閑集(파한집), 補閑集(보한집) 등을 남겼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부림면단원, 구산, 수축, 손오, 율리, 신반, 천락, 대의면행정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