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양진씨(驪陽陳氏)
始祖(시조)와 貫鄕(관향)
始祖(시조) 陳寵厚(진총후)는 高麗(고려) 예종조에 上將軍(상장군) 겸 神虎衛大將軍(신호위대장군)이 되었고 인종 4년 賊臣(적신) □資謙(이자겸)을 討平(토평)한 功(공)으로 □陽君(여양군)에 封(봉)해져 □陽(여양)을 食邑(식읍)으로 하사받음으로써 後孫(후손)들이 貫鄕(관향)으로 삼았다. 그의 先代(선대)는 中國(중국)사람으로 北宋(북송)말엽 左軍(좌군)벼슬을 지내던 福州(복주)사람 陳透(진투)가 遼舍(료사)의 난을 하여 가족을 이끌고 高麗(고려)에 건너와 □陽(여양)에 定着(정착)하게 되었다한다.
入鄕祖(입향조)
穆陵(목릉)시대 草堂(초당) 陳有業(진유업)이 □蛇島夷(용사도이)의 □(난)을 피하여 坡州(파주)의 三峴洞(삼현동)에서 華井(화정)으로 옮겨 은둔하였고 청백리인 道莑公(도봉공)의 증손 梧泉(오천)은 지정면 오천에 터를 잡았으며 部將公(부장공)은 부림면 여배에 터를 잡아 후손이 이어 오고 있다.
後孫分布地域(후손분포지역)
화정면 보천, 지정면 오천, 부림면 여배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