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살림채는 현소유자 9대조인 강지황이 건립한 250~300년 된 건물이라고 전해지며, 모두 5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이 주택은 대문채와 사랑채가 삼(三)자형으로 병렬 배치되어 있고 살림채 좌우에 규모가 큰 곳간과 헛간을 갖추고 있어 조선후기 부농주거의 일반적인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재라고 불리우는 사랑채는 원래 마루 2칸에 방 2칸을 둔 4칸 구성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는 양측에 한 칸씩 덧붙여진 6칸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사랑채로서는 특이하게 맞배지붕 양측에 부섭지붕을 첨가한 지붕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사괴석 기단이나 툇마루 부분에 우물반자. 둥근세살 및 정자 살 갑창 등 미려하고 고급스러운 수장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 상류계층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사랑채 상량문에는 숭정기원후육정묘(崇禎紀元後□丁卯)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1600년대의 건물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살림채는 중앙에 2칸의 대청을 편 총 6칸의 건물이나 양측에 반 칸 규모로 증축하여 8칸의 모습인데 기둥이 낮아 입면이 작아 보인다.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증축된 부분에 부섭을 단 맞배지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본래 300년 된 건물이 낡아 1989년 개축시에 낡은 재료만을 교체하여 원형대로 해체 보수되었다.
여기서 특이한 건물은 살림채의 우측에 위치한 곡간채이다.
정면 9m, 측면 8m로서 모두 10자가 넘는 규모도 장대하거니와 두터운 돌담벽의 벽체, 주변 기둥이 없어 중앙에 팔각기둥 하나만을 세워 가구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지붕은 사모 우진각 형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