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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개 > 지명유래

봉수면 죽전(竹田)1구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4205
등록일
2003.08.29
읍면
봉수면
첨부

이곳 역시 옛날 봉산면(鳳山面) 구역으로 법정동리로는 죽전리로서 죽전 1구와 죽전 2구, 상곡(上谷) 등 세동리가 포함된다. 행정동리 명칭을 정하면서 서쪽마을은 1구, 동쪽은 2구로 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서도 석갑과 돌애비란 지명이 나오는데 확실한 유래와 뜻을 아는 이가 없다. 일설에는 이곳의 지형지세로 보아서 석암(石巖) 또는 석애(石崖)란 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란 설명과 석합(石合) 또는 석압(石岬)으로 한 것이 변음이 되거나 와음으로 서갑(석갑)으로 부르게 된 것이란 설명이 있다. 그런데 삼백년도 더된 침간정과 봉양제 재실 기문에는 봉산(鳳山)의 석촌(石村)으로 돼 있다. 봉산은 옛 행정구역상 봉산면 지역이기 때문이고 석촌은 역시 돌이나 바구(바위)가 지천인 곳이란 뜻인 것 같다. 이곳도 자연환경과 지형지세로 보아 돌말로 불렀던 모양이다. 한편「돌애비」란 지명에 대하여는 그 유래가 불확실하다. 이곳은 광복후까지도 야생닥(닥)을 원료로하여 수공업형태로 만든 전통한지(조선종오)의 주산지였다. 당시만 해도 나락가실(벼 수확)과 보리갈이를 한 뒤부터 내년 6월경인 보리가실(보리수확)때까지 이곳을 비롯하여 궁류, 유곡 등 인접지역의 사람들이 등짐을 한채 전국을 돌면서 「종오장사(종이장사)」를 하는 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 동네 큰 개울가 자갈밭에는 온통 종이를 떠서 말리는 곳이었고 집집마다 종이를 뜨고 말리며 남녀노유 할 것없이 일류기능사였다. 개울건너의 동긋한 산을 농덤이산이라 부르는데 이는 농짝만한 바위가 늘어 서고 포개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며 깊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도랑물은 그야말로 청정한 석간수(石澗水)였다. 바위절벽이 있는 뒷산은 진등산(긴등대의 산줄기란 뜻)이라 부르며 마을터는 남향받이로 앉아 있다. 개울옆 길가에는 큰나무 숲이 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동네안에는 지금으로부터 330여년전인 1883년경에 지었다는 허씨문중의 침간정(枕磵亭)은 오랜동안 서당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마을 안에 진양강씨의 봉양재(鳳陽齋)가 있다. 침간정옆으로 흐르는 계곡을 어른들은 골내릴 방이라고 하는데 골짝도랑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파평 윤씨와 밀양 박씨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 김해허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허씨가 31집으로 대성이고 이씨와 최씨가 6집씩이다. 정·서·전씨등 나머지는 서너집씩으로 모두 98가구가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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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봉수면 총무팀 
  • 연락처 055-570-4782
  • 최종수정일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