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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칠곡면 죽공마을

작성자
칠곡면
작성일
4198
등록일
2003.08.22
읍면
칠곡면
첨부

「댓겡이」또는「바깥말」이라 부르는 길 아래 큰마을과 길위에 자리잡은「굼말」또는「안말」을 합해서 죽공마을이다.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십리가 되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으로서 보통 산북(山北)이란 지명이 더 많이 쓰인다. 옛날에는 이 마을 앞으로 대로가 있었고 주변이 온통 왕대밭으로 쌓여 반마장정도의 길이 대뿌리를 밟고 지나다니는 대밭길이라서 댓겡이(대나무 마디와 옹이를 뜻하는 사투리)가 된 것이다. 대의, 삼가, 산청방면으로 가자면 이 길을 지나서「한티재」(한실재 또는 머릿재)를 넘어야 하므로「재밑말(재밑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굼말(굼실, 안말)」은 구석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동명인데 운곡이라 적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노인들은 요즘도「굼턱」「굼티」「굼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약 오마장 거리에 양촌(陽村)과 산남(山南)마을이 있는데 이 네마을을 합해서 「용동(□)洞)」이라 불렀다. 그 연유는 댓겡이마을 앞 산밑에「미리섶」이라는 천연샘이 있는데 그 샘에서 큰 용이 나와 산위로 치솟아 올랐다가 조금 뒤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미리(용)란 이름이 붙었고 그 산도 망룡산(望龍山)이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샘은 깊지 않으면서도 물은 언제나 그대로며 칠년대한에도 앞들(미리섶들)은 나락을 심었다고 한다. 그 곳 사람들은 「미리섶」「미리섭」하는데 섶과 섭이라면 우물(샘)의 뜻과는 멀기 때문에「미리숲」이나 「미리새미」라는 말이 옳은 것 같다.

마을 어귀에 있는 고총비문에도「무어동(無魚洞)」「죽동(竹洞)」이라 적혀 있다. 굼말 뒷산에는 대의(마전)로 연결되는「포구티재」가 있고 그 아래 말대가리를 닮은「말바구(말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밑에서 말형상의 쇠붙이가 있으며 산신제나 백중날「소미꾸지」를 하는 곳이었다. 여인들이 정성을 드리고 소지를 올리는「소짓골」, 산전 밭때기가 총총한「점밭골」과 누군지도 모르는「장군무덤」, 재 바로 아래 「절터」에는 천연샘이 있고 기와조각 등이 드러나지만 아는 이가 없다. 굼실 뒷동산에는 십여기가 더 되는 고분군이 있다.

아득한 옛날에는 망룡산 자락「골뱅이」쪽에 진양 정(鄭)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굼말에는 김해 김(金)씨와 능성구(具)씨가 같은 시기에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40여 가구 남짓한 한촌으로 김씨가 열집, 전(田) 조(曺)씨가 대여섯집, 오(吳) 이(□)씨가 서너집씩이다. 김씨문중의 「용연정(□淵亭)」과 김씨부인의 효행비가 있고 길가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자복(□自福)공 묘소에 서 있던 미륵상의 망두석 두 개는 도난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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