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 통계

본문 바로가기

의령군청 주요 누리집
  • 글자크기 증가

    글자크기

    글자크기 축소
  • 한국어
  • 닫기

의령군 UIRYEONG 변화의시작 더 살기좋은 의령

지명유래

칠곡면 화촌마을

작성자
칠곡면
작성일
4411
등록일
2003.08.22
읍면
칠곡면
첨부

칠곡면 소재지에서 5백m가량 떨어져 있고 자굴산 가는 길목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원래 진양 하(河)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하촌(河村), 하동(河洞), 하씨동(河氏洞)으로 불러왔다. 뒷날 일제 강점기 지명정비 및 행정구역 정리 때 바꾸게 된 것이다. 하씨 마을을 소리는 비슷하면서 뜻이 좋은 것을 잡아 개명을 하면서 화려하다 □번성하다□빛나다의 뜻을 가진 글자를 취했다. 동네 뒤로 큰 덩치의 영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동서로 나직한 산줄기와 큰 도랑이 흐르고 있으며 집터는 밭들 가운데 앉은 셈이다. 옛 어른들은 「치실노상」이라면 중촌·화촌·내조마을을 모두 아울러서 부른 지명이며 노상안땀 ·노상웃땀으로 따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서녘도랑은 자굴티쪽 여러 산골 물이 모여 내려오는 급류였고 동녘도랑도 상류지대라 웃비만 들면 냇물도 잦아진다. 서녘도랑 따라서 나직한 산등대를「해남등」이라 부르는데 이는 산중턱에 해남현감을 지낸 박서휘공의 묘소가 있고 묘자리도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산줄기 이름이 된 것이라 한다. 「해남등」 너머 깊고 널찍한 골을「방골」「방곡」으로 부르는데 안방처럼 깊숙이 들어앉은 지대라서 그런 지명이 쓰인 것이라 한다. 서녘 산밑들이름이「께띠들」「께띠기들」이라는데 정확한 유래를 아는 이가 없다. 급류가 흐르는 도랑 옆이라 제법 실한 제방(깻둑,방천둑)을 끼고 있어서 깻둑 깨띠 깨띠기 등으로 변음돼 쓰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방골 어귀 산자락에 유서 깊은 숙연재(肅然齋)가 있는데 종실 겸 서재였다고 한다. 마을 안에 청량재(靑陽齋)도 번듯하다. 이 마을에는 하부재로 알려진 부자양반이 마을은 물론 면내 큰일에는 남 앞서서 재물을 기부한 분인데 서헌(曙軒) 하치원(河致源)공이다. 돌아가신 뒤 문중과 지역 유지들의 뜻을 모아 행적표비(行績表碑)를 세웠다. 터줏대감은 하씨였고 지금도 14가구에 전(田)씨 9가구, 이(□)씨, 박(朴)씨, 김(金)씨, 강(姜)씨가 각각 두어집씩 모두래야 38가구만 남았다. 한때는 60여호에 3백 50여 인구가 살았다. 동네 옆 야산에는 밤이며 단감단지가 크게 조성돼 있고 마을에는 현대식 주택이 많이 들어앉아 있다.


목록